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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전쟁 : 노키아의 망한 게임기 N-Gage

혹시 이 사진을 아시나요? N-Gage라는 노키아의 망한 게임기가 E3에서 가격을 발표했을때 사진입니다.

작년에 제 직장 동료인 심백선님이 게임 전쟁이라는 저서를 번역하여 출간했습니다. 게임 콘솔 업계 버전의 삼국지라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콘솔 게임기와 게임 회사들이 어떻게 흥하고 망했는지에 관한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은데 그 중에 노키아에서 출시한 게임기 N-Gage가 어떻게 나오고 망했는지 재밌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합니다.

게임 업계에 반복되는 실수

E3 2013에서 엑스박스 원이 공개되었을 때 기억하나요? 많은 게이머들은 직감적으로 엑스박스 원이 좆망할거란걸 깨닫았었죠.

TV, TV, TV, Sports and Call of Duty

엑스박스 원 공개 내내 게임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엑스박스 원이 어떻게 스마트 TV, 홈허브가 될지에 집중했습니다. 게임기 임에도 게임을 멀리하고 필요없는 셋톱박스 기능을 넣고, 정작 게임에 가장 중요한 하드웨어 성능이 미진하여 엑스박스 원은 플레이스테이션 4에 압도적으로 밀려 실패하게 되죠.

그런데 “게임기로 다른 일 하기”라는 뻘짓은 사실 게임 업계 역사에 오랫동안 반복되온 유서깊은 실수입니다.

1989년에 닌텐도가 게임보이를 처음 출시한 이래로 휴대용 게임기로 게임 말고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는 업계의 탐구가 있었습니다. 게임보이 카트리지에는 국어사전, 외국어 사전, 킴 제임스 성경 등이 들어있었습니다.

게임 전쟁 – 230페이지 “노키아의 실수” 서문

그리고 이 역사에는 노키아의 N-Gage라는 게임기와 휴대용 컴퓨터가 합쳐진 하이브리드 기기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노키아가 만든 이 게임기가 어떻게 탄생했고 왜 좆망했는지 같이 살펴봅시다.

휴대 기기와 온라인 게임의 전성기

닌텐도는 2001년에 게임보이 어드벤스를 출시해서 2년도 안돼 2500만대를 팔았습니다. 게다가 함께 출시된 포켓몬스터는 출시된지 한달도 안되서 일본 톱 10에서 2위와 3위를 차지했죠.

이러한 성공에는 닌텐도의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적인 요소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무선통신을 통한 멀티플레이어 기능이었습니다. 포켓몬스터는 링크 케이블이나 무선 통신을 통해 멀티플레이어가 가능했고 이것이 곧 친구들과 함께 포켓몬을 하기 위해 닌텐도 기기와 게임을 사게 만드는 강력한 매력이 된것입니다.

동시에 한국에서는 리니지, 엑스박스 진영에서는 헤일로가 제각각 온라인 또는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혁명을 이끌고 있었고 미래는 온라인 게임으로 보이고 있었죠.

그런데 ‘휴대기기 게임기’와 ‘온라인 게이밍’이라는 두 혁명은 다소 평행선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온라인 게이밍은 주로 데스크톱 또는 엑스박스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성공한 휴대기기인 게임보이는 근거리 멀티플레이어를 지원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온라인 게이밍을 지원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둘을 융합한 새로운 제품이 나와 시장을 위협하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다만 그러한 혁명에 아이폰의 “터치 스크린”이 필요할 것이란 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던게 문제였죠.

노키아 N-Gage의 등장

노키아의 N-Gage는 2003년 10월에 출시되었습니다.

시대는 온라인 게이밍과 휴대 기기를 합치길 원했고 N-Gage는 공개 당시에는 일부 언론에 의해 혁신적인 기기로 평가받았습니다.

사실 대중교통에서 미개한 야만인들 옆에 우아하게 온라인 게임이나 콘솔 게임을 모바일 기기로 하면서 기술적으로 앞서나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모든 게이머들의 당시 망상이자 욕망이었습니다(사실 저도 그런 망상을 많이 했습니다). N-Gage는 그런 게이머들의 욕망을 채워줄 물건으로도 보였어요.

게다가 노키아 N-Gage는 휴대용 프로세서의 발전에 따라 게이밍을 구현하기에도 적합한 하드웨어 스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CPU: ARM9 기반 프로세서 (ARM920T – 104Mhz)
  • 디스플레이: 176 x 208 픽셀, 2.1인치 TFT LCD
  • 메모리: 내장 메모리 3.4MB, 외장 MMC 카드 슬롯 지원
  • 네트워크: GSM 900/1800/1900MHz (GPRS 지원)
  • 연결성: Bluetooth, USB
  • 오디오: 스테레오 스피커, 2.5mm 헤드폰 잭
  • 배터리: 교체 가능한 리튬 이온, 대기 시간 최대 200시간, 통화 시간 최대 2~4시간
  • 운영 체제: 시리안 OS 기반
  • 게임: MMC 카드를 통한 게임 타이틀 제공

ARM920T 프로세서는 당시로서는 모바일 기기에 충분한 처리 능력을 제공했으며, 게임과 통화 기능을 모두 지원하는 데 필요한 성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출시작 중에는 FPS(!) 게임도 있었어요.

보도 자료에 의하면 노키아 경영진은 N-게이지를 ‘게임을 하는 커뮤니케이션 디바이스’로 묘사하고 2004년 말까지 수백만대가 팔릴것이라 예상했다.

게임 전쟁 – 233페이지 “노키아의 실수” 서문

왜 망했나?

영국 런던아이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N-Gage 시연회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기자들은 런던아이가 한바퀴 다 돌기도전에 이 기기가 실패할걸 알아차렸다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N-Gage는 처참하게 망했습니다.

망한 발표회

N-Gage의 실패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노키아의 대기업 특유의 경직된 문화가 게이밍 업계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이 게임기의 부정적인 인식에 기여를 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책에서 소개된 재밌는 해프닝이 있습니다.

E3 기자회견에서 N-Gage에 젊은 이미지를 투영하기 위해 노키아 임원들이 힙스터 무리와 함께 등장했는데 대기업 임원이 힙스터 무리에 어색하게 끼여있는 풍경이 굉장히 부자연스러워 역효과만 났습니다.

게다가 가격을 발표하면서 좌중에게 N-Gage를 얼마면 사겠냐며 물으며, 금발 미녀가 상의를 벗어 드러난 비키니 복장에 299달러를 적어두는 방식으로 가격을 공개했습니다. 당연히 현장 분위기는 갑분싸했다고.

  •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은 바로 사진이 거의 없었다는 건데 위 현장 사진 만큼은 책에 사진이 있었다면 재밌었을듯

못생긴 디자인

우선 기기가 못생겼습니다.

눈 앞에 두고 플레이하는 게임 보이 어드밴스처럼 생겼지만, 전화기능까지 되어야 하므로 통화시 이 기기를 머리에 붙여야 했습니다. 문제는 마이크와 스피커의 위치상 이 기기의 옆면(…)을 머리에 붙여야 했습니다.

덕분에 굉장히 웃기게 보였다고.. 사람들은 이를 “타코 모드”라고 부르면서 놀렸습니다.

불편한 컨트롤

기존 게임기들과 달리 버튼이 너무 많아 어떤 버튼들을 컨트롤에 사용해야할지 몰라 사용이 불편했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결국 휴대기기와 게임기의 결합이라는 하이브리드의 꿈은 아이폰의 터치 스크린에 의해 훗날 이루어집니다.

너무 작은 화면

해상도는 괜찮았지만, 화면이 너무 작아(2.1인치) 게임을 하기에는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어중간한 화면비로 수직, 수평 어느 방향으로도 많은 콘텐츠를 보여주기 힘들었습니다. 그에 반해 게임보이 어드밴스는 2.9인치의 큰 화면과 더 많은 컬러 공간 지원으로 화면 출력에서는 더 우월했습니다.

불편한 게임 교체

게임 슬롯이 배터리 아래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게임 카트리지를 교체하기 위해 배터리 커버를 제거해야 했어요!

이동 중에 어떤 게임을 하다가 다른 게임을 하고 싶으면 기기를 일일이 종료하고 배터리를 꺼내고 카트리지를 교체하고 다시 덮개를 덮은뒤 휴대폰을 재부팅 해야 했습니다. 못해도 90초는 걸리는데다가 30달러짜리 게임기 카트리지를 대중교통을 타다가 떨구고 잃어버리거나 MMC 카트리지를 손상하기 좋았습니다.

부실한 라이브러리

N-Gage는 유비소픝, EA, 액티비전 같은 게임 회사들과 계약을 하면서 굉장한 게임 라이브러리를 확보할 것처럼 보였습니다(심지어 웜즈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스플린터 셀이나 레드팩션 같은 게임들이 N-Gage로 출시되었고, 일부 타이틀은 게임 웹진에서 괜찮은 리뷰 점수(스플린터 셀의 경우 7~8점)를 받기도 했습니다.

미래에 Ouya 같은 기기들이 제대로된 게임을 내놓지 못해 실패한 것을 생각하면 초기 타이틀의 품질이 괜찮은 것은 굉장한 부분이죠. 하지만 초반을 제외하고 기업들은 N-Gage를 위한 독점작을 만들지 않았고 이에 따라 결국 총 N-Gage 출시 게임 수는 65개 밖에 없었습니다. 이 부분은 다르게 생각하면 N-Gage를 위해 노키아는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게임, 퍼스트 파티 게임을 개발했어야 해요.

닌텐도는 자신들의 하드웨어를 위한 게임을 직접 개발했고 노키아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소니의 포터블 기기인 비타에서도 반복되는데 비타의 가장 큰 결점이 바로 플레이할만한 블록버스터 타이틀 부족이었기 때문이죠.

결국 실패하다.

결국 불편한 디자인, 작은 화면 크기, 게임 교체의 번거로움, 적은 게임수로 인한 사용자 경험의 저하와 함께 초기 이미지가 박살나면서 N-Gage는 이를 개선한 후속작을 내놓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망했습니다. 출시 첫 주에는 전 세계적으로 단지 수천 대만이 팔렸다는 보도가 있었고, 이는 노키아가 예상한 판매량(2004년말까지 수백만대)에 비해 크게 부족한 수치였습니다.

대략 게임보이와 N-Gage의 판매 비율이 100:1을 넘겼을거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의의

그래도 이 망한 게임기의 의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아이폰 이전에 모바일 온라인 게이밍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아래 이미지는 Pocket Kingdom 이라는 N-Gage 베스트 셀링 게임인데 무려 온라인 배틀로얄 게임입니다. 2004년임을 생각하면 대단한점이죠.

게임 전쟁

이 글은 한빛미디어에서 출간된 게임 전쟁이라는 도서에서 발견한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책 자체는 방대한 게임 역사를 압축한 책이라, 게임 업계 사건들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기보다는 담백하게 나열하는데 가끔 이렇게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있어 자세히 조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콘솔 게이밍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길 권합니다. 지금 제가 일하고 있는 유니티 테크놀로지스의 전 CEO가 EA의 전 CEO이기도 해서 가끔씩 그 분이 이 책에 등장하는게 깨알같은 재미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