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내가 보는 세상

시간의 유한함과 직관을 향한 믿음

올해 신설되서 선배도 없고 이제 겨우 한학기를 마쳐 방황하는 후배들을 위해 내가 학교 게시판에 쓴 글.

나중에 편집하면 좀더 좋은 글이 될 것 같은데 조금 일찍 풀었다.

게임을 만들면서 알게된건, 인벤토리가 사실상 무한한 게임을 만들면 사람들은 길가다 나오는 쓰레기를 죄다 주워버린다는 겁니다.

나중에는 수백개의 쓰레기 아이템에 밀려 꼭 필요한 아이템을 찾고 사용하는데 많은 시간을 낭비하죠.
아니면 게임을 즐길 시간도 없는데 비슷비슷한 수백개의 아이템에 의미없는 숫자 옵션을 비교한다고 심하면 몇일을 낭비하구요.

인벤토리에 100개의 바지가 있는데, 땅에 떨어진 바지 아이템을 주워서 100개의 아이템과 옵션을 비교해서 다시 버리고 줍고 다니는, 바지 옵션 비교 시뮬레이션이 됩니다.

하지만 인벤토리 칸이 20개 뿐이라면,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물건들은 버리게 되고, 꼭 필요한 물건만 남게됩니다.
그외의 모든 아이템들은 부차적인게 되고, 자연스럽게 게임을 온전히 진행하는데 집중하게 되죠.

삶을 사는 것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할수는 없습니다.

1인 개발을 하며 다양한 종류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깨닫은 것은, 멀티태스킹은 인간의 직관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저를 잠시 1초라도 가만이 내버려 두지 않고, 하루에도 동시에 수십개의 중요한 메일, 수천줄의 코드, 고객문의를 처리하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동시에 처리한 결과는 만족 스럽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대게 열심히 일했지만 결과는 허접한 쓰레기가 나오거나, 결과 자체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것 저것 동시다발적으로 건드린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은 그저 페이드아웃 되듯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수십개가 되는 여러 분야와 프로젝트를 여기저기 다니며 건드리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노력하지 않았던 결과였습니다.
이것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는 상태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았죠.

그러다 일본의 전통시 서식인 하이쿠에 대해 설명한 글을 함께 읽으며 깨닫은 게 있어 지금은 불안감을 제어하고 많은 것을 온전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하이쿠는 5음 7음 5음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정형시 입니다. 총 17음으로 어린아이도 3초면 다 읽는 분량이지만, 이 제한된 서식에서 시대를 초월한 많은 명작들이 나왔습니다.

만약 제한이 없고 표현하고 싶은 모든 단어를 다 넣어버린다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라 그냥 쓰레기 산문집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17음이라는 극도로 제한된 서식 앞에 시인은 넣고 싶은 대부분의 단어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비핵심적인 단어들은 전부 지워지게 되고, 오직 가장 중요한 단어들만 남게 되죠.

그리고 이런 극도로 제한적인 양식을 가진 시들은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게 합니다.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학살자 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끝나게 되어 있으니까요.

대학을 다니며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들 시간은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가 시간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행동합니다. 자신이 직관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유예합니다.
자신도 사실은 믿지 않는 가능성을 시험해본다고 이것 저것 전혀 중요하지 않은 많은 일을 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호감을 유지하거나 기대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신의 일을 유예하고 타인의 기대에 부흥하는 일을 하려 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무엇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가치 없는 일을 했다는 것은, 동일한 시간에 가치 있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삶을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해봅시다.
이 게임의 목표는 이 세상에 최상의 것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삶이라는 게임에서 인벤토리는 시간 입니다.
남은 생의 1년을 인벤토리 1칸이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을 보는 방식이 조금 다르게 됩니다.

20대를 기준으로, 활발한 에너지를 가지고 세상에 무언가 남길 기회가 30~40칸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프로젝트라는 단위로 부를 수 있는 것들은 평균 1~3칸은 차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인벤토리에 우겨 넣을 수 있는 아이템은 20여개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그 유한함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직관이 거부하는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임을 알게 됩니다. 타인의 기대나 무의미한 절차, 사회의 룰은 모두 부차적인 것이 되고 핵심적인 것만 남게됩니다.
그러니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깨닫고, 어떠한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직관이 가리키는 몇가지 소수의 프로젝트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됩니다. 직관은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걸 누구에게나 증명할 수 있는 이유는, 직관이 거부하는 일을 하면 가슴은 담답하고 심장은 불안감에 휩쓸리기 때문이죠.

  • http://www.masiro.net 김민식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